The Series 4 is about the self, itself of the self, and the self as a relation which relates to itself. The ego is confused in the middle of myriads of notions, and contaminated by anger and the libido of unconsciousness. If it recognizes that confusion and contamination come closer, and the recognizing self is the self of the ego, it can decouple the ego from notions and unconsciousness. Even then, the ego is not the center of the self, rather a relation that relates with the force of genes, notions and unconsciousness.
[Description]
“The human being is spirit. But what is spirit? Spirit is the self. But what is the self? The self is a relation which relates to itself or that in the relation which is its relating to itself. The self is not the relation but the relation‘s relating to itself. A human being is a synthesis of the infinite and the finite, of the temporal and the eternal, of freedom and necessity. In short a synthesis. A synthesis is a relation between two terms. Looked at this way a human being is not yet a self.
Søren Kierkegaard, 『The Sickness unto Death』
시리즈 4의 주제는 자기와 자기의 자기, 자기의 자기와 관계하는 관계로서의 자기이다.
자아는 많은 관념으로 인하여 혼란에 쌓여있고, 무의식의 분노와 성욕으로 인하여 오염되어있다. 스스로 혼란과 오염이 다가오는 것을 깨닫고, 깨닫는 자아가 자기의 자아임을 깨닫는다면, 자아를 관념과 무의식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아가 자기의 중심이라기보다는 무의식, 관념, 유전자의 힘과 함께 관계하는 관계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내면의 다양한 자아가 있는데, 무의식의 이드(ID) 또는 수퍼에고(SUPER EGO) 일 수도 있으며, 유전자(GENE)의 정해진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교육과 문화의 끊임없는 속박에 의한 허상일 수도 있다. 이러한 허상들은 인간의 한 부분이지만 진정한 내면의 자아는 이러한 허상이 아닐 것이며, 인간 육체와 연합한 그러한 허상들이 내면의 자아와 관계하는 관계에서 어렴풋이 인식되어질 것이다.
그 관계는 아마도 내면의 자아가 인간의 허상들과 연결하기 위한 표현하기 위한 손짓이리라.
[ 작품 설명 ]
“인간은 정신이다. 그런데 정신은 무엇인가? 정신은 자기이다. 그러면 자기는 무엇인가? 자기는 자기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며 또는 그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다. 자기는 관계가 아니라 자기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다. 인간은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의,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자유와 필연의 종합이며, 간단히 말해서 종합이다. 종합은 그 둘의 관계이며, 이렇게 보건대 인간은 아직 자기가 아니다.”
쇠렌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임규정 역, (한길사, 2007)